스위스 문화

스위스가 유럽에서 최고 복지 국가~ 잘사는 나라가 되었나!

알프스 하이디 2022. 2. 2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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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 대한 공감 가는 뉴스가 있어 함께 공유해 보려고 이렇게 글을 옮겨 본다.

 

스위스(SWITZERLAND)

(뉴스 출처: 중앙일보) 스위스, 강국 틈바구니서 어떻게 최고 부자나라 됐나

스위스 하면 부자나라, 알프스, 제약, 시계, 은행, 요들송 등이 떠오르는 나라이다.

유럽 심장부에 마치 파라솔을 펼친 듯 자리한 세계 제일의 관광명소이다.

스위스는 겉으로는 아름답기만 한 자연, 알프스의 나라인것 처럼 부드럽게만 보이지만, 속은 매우 단단하고 다부진 나라이다.

한마디로 강소국이라고 한다.

 

인구는 860만명이지만 이웃의 대국 프랑스와 독일이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1인당 국민소득이 8만 달러가 넘는 세계 최상위 부자국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고, 토지도 자원도 없지만 금융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국제정치의 중요한 무대 역할을 하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은 세계 무역기구(WTO), 국제 접십자사(Red Cross), 국제보건기구(WHO), 국제노동기구(ILO)등 30여 개의 주요 국제기구가 있고, 250개의 NGO가 있다.

 

그 외에도 각국의 대사관 및 대표부 172개가 있는 명실상부한 구제 도시로 ' 세계 외교의 수도'로 불린다.

 

스위스가 이처럼 강소국이 된 배경은 무엇일가?

첫째, 국미성이 매우 용맹스럽다.

 

빌헬름 텔을 아시는가.... 아들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두고 화살로 맞춰 생명로 구한 인물이다.

이는 쉴러의 희극이지만 실제 상황에 가깝게 만들 전설적인 이야기라고 한다.

당시, 스위스는 주변 강국들의 압제와 침략에 시달렸다.

외세에 의해 임명된 총독을 암살하고 폭정에 저항하는 자유 투사들의 민중봉기를 그려내 것이다.

 

바티칸 왕국의 용병은 지금도 스위스에서 담당한다.

 

유럽에서 스위스 용병은 아주 용맹하고 강인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바티칸 왕국의 궁성을 지키는 용병도 스위스 출신이다.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는 화려한 제복을 차려입고 임무를 수행한다.

스위스 출신으로만 임명하는 데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1527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가 바티칸에 침입했을 때 스위스 근위대가 거의 몰살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교황과 추기경을 보호하며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목숨을 바쳐 소임을 다한 것을 지금도 높이 사고 있다.

 

둘째: 스위스가 영세 중립국이라는 점이다.

스위스는 유럽의 중심부에 있는 요충지로서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주변 강국들의 위협에 시달려 왔다.

중립을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은 것은 1515년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대패한 직후였다.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주변 국가와 전쟁을 하기보다는 분쟁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중립을 국가전략으로 핵심으로 두고 주변 강국들의 야욕을 지혜롭게 이겨냈다.

 

그 후 300년이 지난 1815년 빈 회의에서 중립을 인정받게 된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전 유럽이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 유럽 대륙이 새로운 질서와 균형을 모색하던 때였다.

당시의 주변 강국들-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프러시아(현재의 독일), 러시아, 스페인 이 스위스가 강국들 사이에 완충 지역으로서 안정적인 균형추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중립화에 동의한 것이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16년간*1799~1815) 영토를 침범당한 것을 제외하면 스위스 영토에서 전쟁이 없었던 것은 거의 500년이다.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평화를 유지했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선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일이다.

 

1,2차 세계 대전에서도 군사적 중립을 지키면서 전쟁 피난민을 수용하고 유럽 부자들의 자금 도피 쳐 역할을 했다.

이것이 스위스 금융 산업이 융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스위스는 특정 국가와의 군사적인 동맹은 철저히 외면한다.

 

유럽의 강력한 군사동맹인 NATO 회원도 아니며, EU 회원도 아니다.

 

중립국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한반도와 같이 강국들에 둘러싸인 나라가 그렇다.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강국들의 국제 분쟁과 대리전에 휘말리게 마련 이어서다.

한반도가 병자호란, 임진왜란, 청일-러일 전쟁 등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전쟁에 시달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위스는 어떻게 샌드위치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벗어날 수 있었을까?

 첫째,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강한 자강 능력을 키웠다.

평화는 다른 나라의 선의에 의존하거나 협정이라는 종이 몇 장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성년이 되면 모든 남자는 4개월간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며, 그 이후에는 10년간 일 년에 3주간씩 훈력에 참여해야 한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72시간 이내에 백만 명을 동원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미사일, 항공, 정밀 화기, 통신 등 방위 산업이 매우 발달했다.

 

둘째 : 프랑스, 독일 같은 이웃 나라들과 지속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어느 한 편의 동맹이 되는 것을 피했다.

적대국 사이에서 철저하게 중립을 지킨 것이다.

다만, 전쟁 부상자 치료, 피난민 수용, 실종자 처리, 포로 교환 등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며 헌신적인 역할을 했다.

 국제사회에 긴요한 정치, 외교, 경제, 문화적인 인프라 제공에 성공한 것이다.

국제 적십자사 유치가 이러한 역할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500년 동안 평화 지키며 부 일궈

수백 년 동안 전쟁이 없고, 국제회의가 가장 많이 개최되고, 또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가 된 것 부럽지 않은가?

그들의 지혜가 놀랍다. 그것이 우연히 된 것은 아니다.

국가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 수백 년 동안 초심으로 노력하며 만들어 낸 결실이다.

지금도 전 국민의 85% 이상이 중립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강국들 틈에 사이에서 끊임없이 침략을 당하며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것이 한반도의 역사이다.

지금 남북미 간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상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그 과정을 전 세계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좋은 결실을 보길 바란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스위스는 수백 년 동안 조용하게 평화를 지켜왔다. 그 결과로 작지만 부강하고 속이 꽉 찬 나라가 되었다. 그들이 추구해온 전략을 깊이 연구하고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스위스는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이다, 우리도 머지않아서 ' 동양의 스위스'가 되는 그날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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